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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래서, 어쩌면

기차와 은하철도999

by photobuntu 2025. 3. 22.

내가 어렸을 적, 제주도에서 기차를 보려면 '삼무 공원'이라는 곳을 가야만 했다.

 

  그곳에는 오래된 증기기관차를 전시해 놓고 있었는데, 그 기차를 보기 위해 주말만 되면 많은 어린이가 방문하곤 했다. 움직이지도 않는 기차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제주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어른이 되어 직접 기차를 타보기 전에는 '기차'라는 단어는 묘하게 나를 설레게 만드는 단어 중 하나였다.

  물론, 이 나이가 된 지금도 기차에 대한 그런 설렘은 여전히 존재한다. 출장이나 여행 등으로 전국 곳곳을 많이 다녀보긴 했지만, 제주도에 사는지라 비행기를 타는 일은 많았어도, 기차를 탈일은 많지 않았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인생무상을 많이 느끼고 있는 요즘, 조금 더 행복하게 내 인생을 마무리하기 위한 버킷리스트를 만들어가고 있다. 

  그 중에는 생각은 많이 했었는데도, 아직도 가보지 못한 정동진을 기차여행으로 가보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아마 올해는 못 갈 거 같지만, 내년에는 혼자서라도 기필코 가 볼 예정이다. 

 

  기차 얘기를 하다보니, 갑자기 어릴 적 인기 애니메이션이었던 '은하철도999'가 생각이 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에 삶의 본질에 대한 화두를 다루는, 지금 생각하면 성인을 위한 애니인데도, 그 당시는 왜 그리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그 당시는 TV 프로에서 방영해 주는 애니메이션이 많지도 않았을 뿐더러, 철이라는 어린이가 주인공에, 우주를 날아다니는 기차에 대한 환상, 동경 등 때문인 듯도 싶다.

  여하튼, 은하철도999에는 지금 생각해도 여러 인상 깊은 장면들이 많지만, 그 중 이런 나레이션이 나오는 한 장면이 내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원래 우주에선 형태가 없는 것이 옳은 것인지도 모른다. 사람이든 별이든 형태가 있는 것은 덧없는 한순간의 일시적인 모습에 지나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은 필시 죽는 존재이기에 뭐가 옳은 것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형태가 있는 것은 언젠가는 사라지게 되어 있고, 나 역시 그런 존재이지만, 형태가 있는 존재의 삶이 덧없고 일시적인 모습에 불과하다면, 그동안의 내인생이 모두 부질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것 같아서 슬플 것 같다.

  그래서 난 기한이 정해져 있는 삶이라도 존재로서 있을 수 있는 삶이 옳고 행복한 삶이란 생각이다.

  내 남은 인생도 그렇게 살고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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