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그래서, 어쩌면21 나는 반딧불. 요즘 들어 흥얼거리며 부르는 노래가 하나 있다. 황가람씨가 부른 '나는 반딧불'이란 노래다. 가사가 딱히 마음에 들거나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그런 건 아니다. 그냥 황가람씨의 목소리와 노래가 너무나 잘 어울려 계속해서 흥얼거리게 만든다. 마치 예전의 18번 곡이었던 박중훈의 '비와 당신'을 처음 들었을 때 느꼈던 기분과 흡사하다. 이런 노래들이 가끔있다. 가사도 멜로디도 아주 좋은 노래가 아닌데도 가슴에 계속 남는 노래. 그런 노래들을 듣다보면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얼굴이 잘 생긴 것도 아니고, 눈에 띄는 매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자꾸 생각나고 보고 싶은 사람. 이젠 나이가 나이인 터라 그런 사람이 되려면 다시 태어나야 하겠지만, 그래도 아쉬움은 남는다. 젊었을 때 .. 2025. 4. 7. 바람이 담긴 촛불 언제부턴가 저녁만 되면 우리집 부엌에는 촛불 하나가 켜져 있었다.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는 촛불이었다. 형님이 백혈병이란 몹쓸 병에 걸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신 후부터 켜지던 촛불은, 그 후에도 몇십 년 동안 단 하루도 꺼지지 않았다. 나는 신도, 미신도 믿지 않는 사람이라 어머니의 그런 정성이 불편하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던 적도 있었다. 평생 자신만을 키우느라 고생만 하시고, 나쁜 짓이라고는 일절 하지 않고 착하게만 살아오신 분인데, 그런 어머니에게서 자식을 앗아가는 아픔을 주신 분에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빌고, 또 비시는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된 건, 내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였다. 그 촛불에는 어머니가 자신의 '소망'을 담았던 것.. 2025. 4. 1. 지긋지긋한 유교문화 나는 조선시대 이후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유교문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유교문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허례허식이 너무 많다는 것이 가장 크다. 단적인 예로 제사를 지내는 건 뭐 그리 복잡한지... 술 한잔 올렸다고 절하고, 제기 뚜껑 열고 또다시 절하고, 젖가락 올리고 절하고, 숟가락 올리고 절하고... 1년을 기다려 제삿밥 한 끼 얻어 먹으려고 온 망자들이 맘 편히 식사도 하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왜 제사나 명절에는 잘 알지도 못하고, 친하지도 않은 친척들까지 다 모여야 하는 건지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제사나 명절에 모인 친척들 중에는 돌아가신 분과 생전에 사이가 안 좋거나 다른 이유 등으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 있을 텐데 말이다. 정말 돌아가신 분.. 2025. 3. 30. 사랑이 나쁜 걸까, 아니면 내가 나쁜 걸까? 사랑은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당연한 거겠지만, 나는 약속을 지키지 않거나,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만, 남들과 다른 점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도 똑같이 적용했던 거라 내 스스로의 떳떳함은 있다. 그렇게 정직하게 살려고 노력해 온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게 바로 사랑이다. 사랑은 항상 나를 거짓말쟁이로 만든다. 그녀의 손을 잡으며 "우리 영원히 함께 하자."고 했던 말을 한번도 지키지 못했고, 그녀를 품에 안으며 속삭였던 "너만을 사랑할 거야."라는 약속도 한번도 지키지 못했으며, 달콤한 키스를 하고 난 후 "사랑해. 언제까지나."라고 했던 말도, 그녀와 뜨거운 사랑을 나눈 뒤 "내가 널 지켜줄게."라고 했던 약속도 결국은 거짓이 되고 .. 2025. 3. 29. 추적추적 내리는 비.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면 내 맘도 비와 같아진다. 가벼움도 무거움도 아니다. 어쩌다 보니 그 중간쯤. 목에 가래가 낀 것만 같다. 포효를 하고 싶어도 입 밖으로 나오지가 않는다. 답답하고, 우울하다. 새벽 4시. 시간마저도 어중간하다. 요즘은 항상 이렇다. 그리움도 그렇다. 싫다. 이 어중간함이. 천둥 번개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원스레 내리는 빗소리가 듣고 싶은 밤이다. 2025. 3. 28. 갈옷에 얽힌 추억 내가 어렸을 적에는 여름이 오기 전 이웃 아낙내들이 모여 제주도 사투리로 '갈중이'라 부르는 갈옷을 만들곤 했다. 어린 시적 내가 살던 집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키다리 아저씨만큼이나 큰 커다란 감나무에 작은 감들이 한가득 열리는 집이 있었다. 그 감나무는 가을만 되면 어린 내가 지나갈 때마다 주황색 예쁜 몸을 흔들며 자신을 한입 먹어 보라고 유혹하곤 했다. 손을 뻗으면 가지 아래에 달린 감을 딸 수 있을 정도로 키가 자라서야 나는 그 감 하나를 몰래 따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예쁘고 맛있게 보이던 그 모습과는 달리 상상을 초월하는 떨음에 나는 깨물었던 감을 얼른 뱉어내고는 "너, 나 속였어!!", "이렇게 맛없는 감을 왜 키우는 거지?"라며 구시렁거렸다. 그 후에는 아무리 그 못된 감나무가 나를.. 2025. 3. 27. 이전 1 2 3 4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