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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래서, 어쩌면

친구를 잃어버린 달

by photobuntu 2025. 3. 23.

오랜만에 저녁에 밖을 나왔더니, 보름이 갓 지난 듯한 둥근 달이 환하게 떠 있었다.

 

  달빛은 둥글고 환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달빛이 무척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왜 일까?

 

  가던 걸음을 멈추고, 왠지 나와 닮아 보이는 그 달을 잠시 바라 보았다.

  너무나도 환하게 빛나는 달빛이 왜 그렇게 외로워 보였는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너도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거니?"

 

  나의 물음에 달빛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이 마을에서도 달의 많은 친구들이었던 별들을 볼 수 없게 된 지가 상당히 오래된 것 같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너와 별 친구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갑자기 미안해지네..."

 

  자조 섞인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달이 괜챃다는 듯 반짝거리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닌 걸. 아, 참! 나 너 기억나. 어릴 적 저곳에 있었던 평상에 누워 한탐이나 날 바라보곤 했었지?>

  "그래 맞아. 너도 날 기억하는 구나! 그때가 참 좋았었는데..."

  <그래. 나도 그때가 참 좋았어. 그때는 너와 같은 인간들뿐만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존재들이 내가 보내주는 빛에 감사함을 표하곤 했지. 그런데 이제는 내가 이렇게 밝고 환한 빛을 보내줘도 아무도 고맙다고 해주지 않아.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거지.>

 

  절대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서 있는 자리만 해도 달빛보다 더 환한 LED 가로등이 주위를 환하게 밝혀주고 있었으니까.

 

  내 맘을 읽었는지, 달빛이 다시 한 번 환하게 반짝거렸다.

 

  <날 위로해 줄 필요는 없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그렇게 사라지고, 또다시 태어나거든. 난 나의 존재가 사라질 때까지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면 되는 거야. 그게 내 숙명이고.>

  "그래도 미안해."

  <아니야. 미안해 할 필요없어. 오늘도 갈 길이 먼데, 너랑 얘기하느라 좀 늦어버렸네. 수다쟁이 태양이 깨어나기 전에 저 끝까지 가야하니까, 난 이제 가봐야겠다.>

  "그래. 잘 가, 친구야. 오늘 반가웠어."

  <그래, 내 어릴 적 친구야, 잘 가.>

 

  따스함이 느껴지는 환한 빛을 한 번 더 나에게 보내준 달은 그대로 구름 속으로 사라져 갔고, 나는 그런 달을 잠시 더 지켜보다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 밤은 어릴 적 헤어진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아 행복한 잠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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