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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래서, 어쩌면

마음이 행복해지는 미소를 가진 아이

by photobuntu 2025. 3. 18.

지금은 많이 나아지기는 했지만, 10여 년 전부터 나는 나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드는 기생충들과 동거를 하고 있다.

공황장애, 우울증, 대인기피증이란 기생충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년 전, 그 기생충들과의 싸움에서 이겨볼 요량으로 병원치료와 더불어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바리스타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하얗고 귀여운 얼굴에 항상 얼굴 가득 미소를 짓고 있는, 보고만 있어도 같이 미소를 짓게 만드는 그런 20대 초중반의 소녀를 알게 되었다.

  그 소녀는 바리스타 실습 도중 누군가가 실수로 원두 가루나 커피 등을 쏟았을 때 가장 먼저 다가가 바닥과 테이블을 닦아 주던 소녀였고, 그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던 소녀였다.

  종강하던 날 마지막으로 2개월 정도를 함께 한 수강생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카페에 갔을 때에도 늦게 온 나를 홀로 기다려주기도 했던 소녀이기도 했다.

 

  그 당시 홀로 남아 나를 기다려 주었던 그 소녀에게 내가 이렇게 물었던 기억이 난다.

 

  "정아씨는 왜 들어가지 않고 나와 있어요?"

  "완님과 같이 들어가려고요."

 

  강산이 두세 번은 변했을 만큼이나 나이 차이가 나는 아저씨에게도 스스럼없는 친근함과 배려심을 보여주었던 그 소녀를 아쉽게도 나는 그날을 마지막으로 한참 동안이나 볼 수 없었다.

 

  그런 그 소녀와 다시 연락하게 된 건 그로부터 약 1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가을이 깊어져 가며 새벽에 잠을 자주 깨곤 했는데, 그날도 새벽 5시경에 잠이 깨었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다시 잠이 든 짧은 시간에 그 소녀가 꿈에 나타났다. 여전히 그 소녀는 그 당시 그때처럼 환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아침이 된 후에도 그 소녀의 미소가 자꾸 떠오른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연락처를 뒤져 소녀에게 톡을 보냈다.

 

  <잘 지내나요? 여전히 이쁘고 귀엽고요? 새벽꿈에 난데없이 정아씨가 나타나 반가운 마음에 톡을 보내요. 환절기 건강관리 잘하고, 아프지 말고, 행복해요~>

 

  답장은 바로 오지는 않았다. 일을 하다 틈틈이 '1' 표시가 사라졌나를 확인하길 여러 번 약 3시간 만에 그 소녀에게서 톡이 왔다.

 

  <완님!!! 카톡이 이렇게 반가운 거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고 계시죠? 제가 바리스타 단톡방을 오랫동안 못 봐서 차마 연락을 남기기가 어렵더라고요. ㅎㅎ 연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저도 단톡방은 안 봐서. ㅎㅎ 행복하게 잘 살고 있죠? 언제, 어디선가 우연히 만나면 웃으며 차 한잔해요. 정아씨 미소 보고 싶네요.>

  <저 사실 안덕면에 있는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데, 제 몸이 많이 망가지고 있어서 이번 달까지만 일해요! 시간 괜찮으시면 놀러 오세요. 저도 다정다감하신 완님 너무 보고 싶어요.>

  <틈내서 꼭 갈게요.>

  <이게 이번 달 제 일정표에요. 꼭 놀러 오세요.>

  <몰래 찾아갈게요. 아프지 마요.>

 

   마지막 이별로 우울의 이불을 덮고 자던 나에게 그 소녀와의 약속은 다소나마 도파민이 되어 주었다. 언감생심, 그 소녀에게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품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저 꿈속에서 본 그 소녀의 미소를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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