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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래서, 어쩌면

툇마루

by photobuntu 2025. 3. 19.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에는 작은 툇마루가 있었다.

 

    여름날 툇마루에 누워 있으면 어디선가 몰래 나타난 장난꾸러기 산들바람이 몸 이곳저곳을 간지럽히며 놀아달라고 보채곤 했다.

  따뜻한 햇살의 보살핌 아래 장난꾸러기 요정들과 놀다 보면 어린 나는 어느새 잠에 빠져 행복한 꿈을 꾼다. 하늘을 나는 꿈에서 달콤한 사탕을 먹는 꿈까지.

  

  문득, 얼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눈을 떠 보면 하늘이 온통 검은색으로 변해 있다.

  투둑, 투둑 소리를 내며 얼굴에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들.

  손등으로 눈 주위를 두어 번 비벼주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내가 툇마루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길게 편다.

  나와 놀아주던 산들바람과 이불이 되어주던 햇살은 어둠과 비를 피해 이미 어딘가로 숨어 버린 뒤다. 하지만, 괜찮다. 이맘 때쯤 내리는 소나기 역시 나의 친구니까.

  다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소나기 친구와 가벼운 물장난을 하던 내가 갑자기 툇마루에서 폴짝 뛰어내린다.

  밭에 가신 어머니가 돌아오면 혼낼 것이 분명한데도, 어린 나는 물이 흥건히 고인 마당을 첨벙첨벙  뛰어다니느라 바쁘다. 간만에 만난 소나기 친구와도 놀아줘야 했기 때문이다.

 

  산들바람과 소나기 친구는 여름이 가버리면 당분간은 볼 수 없겠지만, 그래도 괜찮다.

  툇마루에 앉아 기다리고 있기만 하면 가을에도, 겨울에도, 그리고 봄에도, 계절을 닮은 친구들이 찾아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