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저녁만 되면 우리집 부엌에는 촛불 하나가 켜져 있었다.
어머니의 간절한 바람이 담겨 있는 촛불이었다.
형님이 백혈병이란 몹쓸 병에 걸려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로 돌아가신 후부터 켜지던 촛불은, 그 후에도 몇십 년 동안 단 하루도 꺼지지 않았다.
나는 신도, 미신도 믿지 않는 사람이라 어머니의 그런 정성이 불편하기도 하고 이해가 되지 않던 적도 있었다.
평생 자신만을 키우느라 고생만 하시고, 나쁜 짓이라고는 일절 하지 않고 착하게만 살아오신 분인데, 그런 어머니에게서 자식을 앗아가는 아픔을 주신 분에게 뭐가 좋다고 그렇게 빌고, 또 비시는지...
그런 어머니의 마음을 알게 된 건, 내가 가정을 꾸리고, 아이들을 키우면서부터였다.
그 촛불에는 어머니가 자신의 '소망'을 담았던 것이 아니라 가정의 무사 안녕을 바라는 '바람'이 담겨져 있었다.
그후로는 모두 잠들은 깜깜한 밤이 되면 가끔은 촛불 앞에 서서 합장을 하곤 어머니의 바람에 나의 바람을 더해 보기도 했었다.
이제 더 이상 그 촛불은 켜지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안다.
지금도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우리의 무사 안녕을 기도하는 촛불이 항상 켜져 있을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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