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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래서, 어쩌면20

봄 같지 않은 봄 봄인데 봄 같지 않은 봄이다.   추운 겨울을 지나 따스한 봄이 왔는데도 전국에 퍼진 산불로 인해 봄 같지가 않다.   산불 대부분이 인재란 보도가 있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무언가를 하기 전에 잠시 잠깐 만이라도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 것인가를 생각한다면 이런 일들도 줄어들텐데...  아쉽고, 안타깝다.   산불 현장에 물을 실어가는 헬기 앞에서 골프 치는 사진을 찍은 분도 마찬가지다.  뭐, 사진을 찍을 수는 있다고 하자. 하지만, 잠깐만 생각을 한다면 그 사진을 SNS에 올리면 어떤 말들이 나올지 뻔하게 예상되지 않나? 설마, 그 사진을 보고 '멋지다!'라는 환호라도 해 주길 바란 건가?    정말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들로 세상이 꽉 채워져 가는 느낌이고, 세상에서 배려.. 2025. 3. 26.
폭낭과 먹쿠슬낭 어릴 적 내가 살던 마을 윗동네 삼거리에는 '댓돌'이라 불리던, 마을 어르신들이 앉아서 쉬던 쉼터가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아주 커다란 '폭낭' - 제주 방언. 표준어로는 팽나무. - 두 그루가 길 양쪽을 마주 보며 서 있었다.   그 댓돌과 퐁낭은 더운 여름날 어르신들의 쉼터와 그늘이 되어 주었을 뿐 아니라, 윗마을, 아랫마을 할 것 없이 마을에 사는 모든 아이들이 놀이터가 되어 주던 곳이었다.  그런 댓돌과 퐁낭이 얼마 전 마을 안길 확장 공사로 퐁낭 한 그루만 남겨 놓고 모두 사라져 버렸다.  하나 남은 퐁낭 한 그루도 마을 토막이 어르신들이 마을 수호목이라 옮기면 안 된다고 반대해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이고, 반대하지 않았더라면 그 한 그루마저도 관상용으로 팔려 갔을 것이다. 내가 어릴 적에도.. 2025. 3. 25.
어두운 밤 밤이다.    어둡다.  밤이니 어두운 건 당연한 거지만, 왠지 오늘 밤은 유난히도 어둡다.    별도 달도 숨어 버린 밤.  자다가 일어나 책상 위에 앉아 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부터 깊은 잠을 자지 못할 때가 많다.  젊을 때는 12시간 넘게 꼼짝 않고 잘 때도 많았는데...  이것도 세포노화에 따른 증상일까?   아직도 정신은 20대인데...  마치, 육체와 정신이 분리되어 버린 것만 같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다 이런 거라고 위로를 해 보지만, 오늘 따라 그 위로가 먹히지가 않는다.  오늘 밤은 술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하나?   아무래도 오늘 밤은 달이 얼굴을 비춰주지 않으려나 보다. 2025. 3. 24.
봄이 봄이다. 꽃도 봄이고,바람도 봄이고,하늘도 봄이고,공기마저 봄이다. 벤치에 앉아봄에 몸을 맡긴다.포근하다.따스하다.스르르르눈이 감긴다. 그러니,나도 봄이다. 2025. 3. 23.
숨바꼭질 그동안 나는 내가 숨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잘 숨으려고 노력하진 않았다.  술래가 찾을 수 있게 머리를 살짝 내밀어도 봤고, 팔과 다리를 은근슬쩍 보여주기도 해봤고, 그래도 못 찾을까봐 일부러 소리도 내봤다.  하지만, 그렇게 날 찾아달라고 티를 냈는데도 술래는 나를 찾지 못했다.   문득, 못 찾는 것이 아니라 찾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머리를 흔들며 부정에 부정을 해 봤지만, 어째 더욱 비참한 생각만이 떠올랐다.  혹시...  설마...  그동안 숨바꼭질 놀이를 나 혼자 하고 있었던 건가?  그랬구나...  그래서 술래가 보이지 않았던 거구나...   창피해졌다.  밖으로 내놓았던 머리와 팔다리를 거북이 마냥 안으로 집어넣었다.  단단한 등껍질 속 .. 2025. 3. 23.
친구를 잃어버린 달 오랜만에 저녁에 밖을 나왔더니, 보름이 갓 지난 듯한 둥근 달이 환하게 떠 있었다.   달빛은 둥글고 환했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달빛이 무척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왜 일까?   가던 걸음을 멈추고, 왠지 나와 닮아 보이는 그 달을 잠시 바라 보았다.  너무나도 환하게 빛나는 달빛이 왜 그렇게 외로워 보였는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알 수 있었다.   "너도 사랑하는 친구를 잃은 거니?"   나의 물음에 달빛이 조금 흔들리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내가 사는 이 마을에서도 달의 많은 친구들이었던 별들을 볼 수 없게 된 지가 상당히 오래된 것 같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너와 별 친구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갑자기 미안해지네..."   자조 섞인 내 중얼거림을 들.. 2025. 3.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