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그리고, 그래서, 어쩌면21

기차와 은하철도999 내가 어렸을 적, 제주도에서 기차를 보려면 '삼무 공원'이라는 곳을 가야만 했다.   그곳에는 오래된 증기기관차를 전시해 놓고 있었는데, 그 기차를 보기 위해 주말만 되면 많은 어린이가 방문하곤 했다. 움직이지도 않는 기차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그렇게 제주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어른이 되어 직접 기차를 타보기 전에는 '기차'라는 단어는 묘하게 나를 설레게 만드는 단어 중 하나였다.  물론, 이 나이가 된 지금도 기차에 대한 그런 설렘은 여전히 존재한다. 출장이나 여행 등으로 전국 곳곳을 많이 다녀보긴 했지만, 제주도에 사는지라 비행기를 타는 일은 많았어도, 기차를 탈일은 많지 않았기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인생무상을 많이 느끼고 있는 요즘, 조금 더 행복하게 내 인생을 마무리하기 위한.. 2025. 3. 22.
나는 담배는 피우지 않지만, 술은 주종에 관계없이 즐긴다.   술 마시는 걸 워낙 좋아해서 30대 초중반에 통풍에 걸려 고생하기 전까지는 좋은 사람들과의 회식이라면 빠지지 않고 참여 했던 것 같다.  뭐, 그렇다고해서 술주정이 있거나 그런 건 아니다. 20살 때 헤어진 첫사랑이 다른 남자와 있는 걸 봤을 때 빼고는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겨 본 적도 없고, 기본적으로 정신 제어는 잘 하는 편이라 술 마시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줘 본 적도 없다.  그랬던 내가 이제는 확실이 나이가 들었는지, 술을 많이 마시지는 못한다. 소주는 많이 먹어야 두 병, 그것도 가뭄에 콩나듯이 먹을 뿐이고, 평소에 술 생각이 나면 편의점에 들러 캔맥주 500ml 하나 정도만을 마실 정도로 술이 약해졌다.   그런데 참 특이한 .. 2025. 3. 22.
풍류를 아는 낚시꾼과 행복한 배짱이 그랬으면 된 거다.   좋다니 다행이다.  고맙다니 마음이 놓인다.  진정한 낚시꾼은 물고기를 잡으려고 낚시를 하는 것이 아니다.  세월을 낚는 것이오, 인생을 낚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풍류를 아는 진정한 낚시꾼이고, 타고난 배짱이다.  누군가의 눈에는 배짱이가 그저 게으름뱅이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배짱이 역시 그만의 삶을 살고 있을 뿐이다.  즐겁게 살다 즐겁게 죽을 수 있으면 그 또한 행복한 인생이지 않은가?  이제 배짱이가 평생 지고 살던 유일한 짐마저 내려놓았다. 드디어 진정한 배짱이가 된 것이고, 풍류를 아는 낚시꾼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된 것이다.그러므로, 나 역시 행복한 삶이다. 2025. 3. 21.
두유와 모닝빵 나는 매일 아침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두유 하나와 모닝빵 하나를 들고 어머니를 뵈러 가곤 했다.   치매끼가 오신 어머니가 거동까지 잘 못하시게 된 후로는 거의 매일 빼놓지 않고 갔었다.  어머니가 두유를 워낙 좋아하셔서 예전에는 박스 째로 가져다 드리곤 했지만, 치매를 앓기 시작하신 이후로는 그러지 않았다. 두유 하나와 직접 만든 빵 하나를 매일 가져다 드리는 것이 무뚝뚝한 아들의 사랑 표현이었던 것이다.  내가 효자라서 그런 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불효자에 가까웠다. 한동안은 어머니와 너무 사이가 좋지 않아서, 진짜 안 볼 결심까지 했을 정도로...  그러다, 점점 더 기억을 잃어가고, 잘 걷지도 못하는 어머니를 보게 된 순간, 어머니의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2025. 3. 20.
낭만이라는 이름의 통기타 나는 통기타가 한창 유행할 시기에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에는 MT, 여행 등 어딜 가더라도 친구들 중 한두 명은 꼭 통기타를 들고 왔고, 밤이 되면 모두 모닥불 앞에 모여 앉아 통기타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며 캠프파이어를 즐겼다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 기타를 치는 친구의 모습이 부러워 용돈을 모은 돈으로 통기타를 사서 독학으로 기타를 익혔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기타를 놓은 지가 오래되서 코드 잡기도 힘들고, C, D, E, F, G, A 등 기본 코드 밖에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즈넉한 여름밤 평상에 앉아 나름 분위기를 잡으며 기타를 쳤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도, 나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이런 통기타에 관한 추억 하나 쯤은 다들 가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2025. 3. 20.
툇마루 어릴 적 내가 살던 집에는 작은 툇마루가 있었다.     여름날 툇마루에 누워 있으면 어디선가 몰래 나타난 장난꾸러기 산들바람이 몸 이곳저곳을 간지럽히며 놀아달라고 보채곤 했다.  따뜻한 햇살의 보살핌 아래 장난꾸러기 요정들과 놀다 보면 어린 나는 어느새 잠에 빠져 행복한 꿈을 꾼다. 하늘을 나는 꿈에서 달콤한 사탕을 먹는 꿈까지.    문득, 얼굴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기운에 눈을 떠 보면 하늘이 온통 검은색으로 변해 있다.  투둑, 투둑 소리를 내며 얼굴에 떨어지는 굵은 빗방울들.  손등으로 눈 주위를 두어 번 비벼주고,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내가 툇마루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길게 편다.  나와 놀아주던 산들바람과 이불이 되어주던 햇살은 어둠과 비를 피해 이미 어딘가로 숨어 버린 뒤다. 하지만.. 2025. 3. 19.